주일 낮 말씀
본문: 사무엘상16:6-13
제목: 하나님은 마음중심을 보시느니라!
사울이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그가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왕을 찾기 위해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낸다. 이새의 집에 도착한 사무엘은 이새의 큰 아들을 보고 기름을 부으러 하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마음중심을 보느니라” 그 후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불러 그 앞을 지나가도록 하였으나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를 찾지 못한다. 그러자 이새에게 여기 모인 아들들이 전부냐고 묻는다. 그러자 이새가 대답하기를 막내아들이 아직 들에 남아 있다고 하자, 즉시 그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사무엘이 다윗을 보며 기뻐하자 하나님께서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여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다.
구약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가 오시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은 전부 장차 오실 그리스도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사무엘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인간들에 의해서 세움 받은 왕과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운 왕이 어떻게 다른가를 우리들에게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들이 세운 왕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달리 마음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 그 결과 인간들이 세운 왕은 하나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반면, 하나님께서 세운 왕은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인간들이 세운 왕은 하나님 말씀을 생각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곧 잊어버리고 말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운 왕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중심에서 받기 때문에 철저히 순종하게 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때나 현재나 성령(聖靈)은 하나님이라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실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성령께서는 인간의 몸 밖에서 인간의 마음을 붙잡고 일하시는 것이다. 이때 인간이 세운 왕이나 스스로 선지자가 된 자들은 마음 판이 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일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지라도 그들은 자기 생각을 갖고 말하는 자들이라서 진리의 말이 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이런 자들에게 속으면 사단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운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 중심을 보고 선택한 자들이라서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일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 밭이 어떠한 가를 보시기 위해서다. 마태복음13장을 보면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여러 종류의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은 아직 예수가 오시기 전이라 하나님께서도 가장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자를 일꾼으로 뽑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었던 아브라함과 더불어 이삭과 야곱을 포함하여 구약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들 대부분이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중심을 보시고 사역자로 뽑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외모를 보고 사역자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중심을 보고 일할 사람을 뽑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운 자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나 사울처럼 인간에 의해서 왕이 되거나 스스로 선지자가 된 자들은 자기 생각에 의지해서 활동하는 자들이라서 당연히 하나님 말씀을 거역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자들을 두고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라고 부른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세운 참 선지자도 있었지만, 거짓 선지자들도 많았다. 다만, 성경에 그들의 활동이 기록되지 않아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 실상은 거짓 선지자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예수가 오시고 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율법아래 갇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 위해서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자들은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지 못했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면,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 없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가지고 예수를 판단하게 되면, 예수는 율법이나 범하고 다니는 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자신을 하나라고 동등 됨을 취하였으니, 그들 눈에 예수는 당연히 하나님을 모독한 불경죄에 해당된다. 이스라엘 사람들 눈에 비춰진 예수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예수를 메시아로 믿겠는가? 그러나 예수의 본래목적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해결 받고 싶었던 죄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다. 예수께서 하고 다니시는 행동을 조금만 마음속으로 갖고 들어가서 살펴보면, 예수가 하고 다니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들이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던 사고방식이 예수까지도 마음으로 믿지 못하게 되자, 결국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로마군의 손을 빌어 죽이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과연 예수를 마음으로 잘 믿고 있는 사람들일까?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마음으로 믿었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예수께서 좌정해 계셔야 한다. 예수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다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령은 아버지 영(靈)이요 예수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모두가 사울 왕처럼 하나님 말씀(성령)을 거역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다는 증거요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 모두가 사울 왕처럼 마음속에 악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악독이 가득하게 되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자들은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말은 번지르르 하여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속빈 강정들이다.
하나님께서 구약 때 마음중심을 보시고 선지자들을 장차 오실 그리스도 모형으로 사용하셨듯이,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 중에도 마음중심을 보시고 장차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 모형으로 사용하시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마음 중심을 보고 발탁한 자들은 자기 생각대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령께서 지시하는 대로 사역을 해나간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 받아 쓰임 받는 자들은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목사가 되거나 스스로 전도자가 되어 사역하는 자들이라,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사역을 하게 된다. 이런 자들은 성령의 뜻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죽은 생각”을 따라 사역을 하는 자들이라서, 이런 자들의 말을 듣고 따라 갔다가는 십중팔구 자신도 지옥자식이 되고 만다.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난 요즘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아 사역하는 자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대부분 스스로 사역자가 된 자들이 더 많다고 보면 틀림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사역자가 된 자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믿는 자들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악이 가득하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거짓됨을 감추기 위해서 언변이 화려하고, 자신을 거룩하게 포장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속담에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화려한 교회일수록 숨은 것이 더 많고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일수록 속에는 감추는 것이 더 많다. 겉으로 착해 보이고 선해 보이는 자일수록 그 마음속에는 악한 것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 한번 화를 내면 더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바리새인이다. 그들이 입으로는 아주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에 예수 역시 믿지 못하는 것이다. 외적인 행동만 보았을 때는 예수는 영락없이 이단괴수다. 그러나 그가 맡은 사역을 알게 되면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를 마음으로 믿었다면, 장차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 역시 잘 믿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현재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있는 행태로 보아,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 역시 생각으로만 믿을 확률이 많다. 예수를 생각으로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으로만 예수를 믿게 되면 그것은 진정성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은 믿음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수께서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 밭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우리 인간들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도 있고,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도 있고 또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마음이 모두 부패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면 우리의 부패한 마음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믿는 자들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아니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마지막 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아직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가 아직 기독교인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안했는데,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인가?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을 그리스도 영이라고 둔갑시켜서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이 거짓 목사와 삯꾼 목사들을 이용하여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바로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아버지 영이다. 따라서 성령과 그리스도는 하시는 일 또한 각각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거짓 목사들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러분들의 영혼을 사냥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누차 드리는 말씀이지만,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거짓목사들에게 속으면 안 된다. 자신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자신의 옛 사람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장차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생각에서 주님 말씀을 받지 말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주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자신이 곧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곧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도 믿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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