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두 마음!

거친반석 2016. 7. 17. 14:05

주일 낮 말씀

본문: 요한복음8:1-11

제목: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두 마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악 속에서 태어난다. 이 죄악은 죽는 날까지 인간들과 함께 하며, 인간이 죽기 전에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생전에 이 죄악을 해결 받지 못하고 죽게 되면, 죽은 후에는 죄악의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된다. 믿는 자라고 하여 무조건 이런 죄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이런 죄에서 벗어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한 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믿고 구원에 이른 것을 보고, 자신들 또한 무조건 예수 이름만 부르면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 믿고 우쭐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았던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이런 죄에서 자유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적이 없이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자들이다. 그렇게 살던 자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굳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온갖 것을 지켜가며 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2천년 동안 온갖 것을 참아가며 죽도록 신앙생활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이방인들처럼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다가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믿었더라면 훨씬 더 예수 믿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율법이 도리어 걸림돌이 되어 예수 믿기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이방인들의 구원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예수 이름만 부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어느 누구에게나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율법아래서 2천년을 넘게 살았던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외람되게도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고, 이방인들은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똑같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어도 유대인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지만, 이방인들은 아무리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라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단번에 구원에 이르게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신 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그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도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율법을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이다. ,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도 비로소 성령을 받고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된 기독교인들은 의무적으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을 따라 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역시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갖고 있던 죄악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 현재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에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서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다시 오셔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기 전에 반드시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래야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는다. 성령을 거역한 죄는 살아생전에 해결 받아야 된다. 죽은 후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 있을 뿐이다. 어떤 자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죽은 후에라도 예수께서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자들은 모두 사단의 하수인들로서 믿는 자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서 파송된 자들이다. 이런 자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게 되면 함께 멸망으로 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구원 받았다고 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마음속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선생노릇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는 자들이 선생노릇을 하게 되면, 그 밑에 있는 자들은 모두 사단의 자식이 되고 만다. 그래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함부로 선생 노릇하지 말라!”고 경고 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이 선생노릇을 하게 되면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많은 학문과 출중한 지식으로 교인들을 가르쳤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 중에서 예수를 믿었던 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자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어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자들로 인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셨을 때, 믿는 자들보다는 믿지 않는 자들이 훨씬 더 많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 율법을 주시고, 육체에 있는 죄를 찾아내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게 되면, 그에 대한 형벌로서 유대인들 몸에 병이 들게 하였다. 레위기에는 율법을 어길 때 어떤 병이 들게 되는가를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이스라엘 땅에 유독 병든 자가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러니 하게도 예수가 오셨을 때, 건강한 자들보다는 병든 자들이 예수를 찾아왔다. 건강한 자들이라고 하여 율법을 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병든 자들보다는 그들이 좀 더 율법을 가려서 지킨 것 때문에 몸에 병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병든 자들은 예수를 찾아오는데, 건강한 자들은 예수를 찾지 않았다. 예수를 찾아와서 병 고침을 받았던 것은 곧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았던 것이다. 그런 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끝까지 예수를 믿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후에 성령까지 선물로 받고,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 해결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건강한 자들은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하여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도 해결 받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담이 지은 원죄도 해결 받지 못하게 되어, 성령도 받지 못하고 마귀 자식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찾아내도록 하셨다.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찾아내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겉으로 드러낸 죄만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어느 누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겉으로 드러난 죄만 가지고 그를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낸 죄만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다. 요즘 목사들의 범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교회 돈을 횡령하는 것은 둘째 치고, 교회를 자기 개인 소유마냥 아들에게 물려주고, 심지어 목사가 여 성도들을 성폭행했다는 뉴스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목사를 매도하고 손가락질 한다. 같은 목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는 그 목사의 겉으로 드러난 죄만 가지고 그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또한 그와 다를 봐가 하나 없다. 다만, 그 목사에 비해 우리의 죄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깨끗한 척 고상한 척 남을 쉽게 정죄하고 비판한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서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가를 먼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게 되면, 나 역시 의인(義人)이 되어 부활하신 예수가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를 믿지 못하고 배척하고 말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나,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하여 영으로 오시는 예수나, 예수께서는 오직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의 죄만 해결해주신다. 만약 여 성도를 성폭행했던 목사가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되면, 예수께서는 그런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목사는 성령을 거역한 죄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지었던 모든 죄까지 사함 받고 영생에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성폭행도 하지 않았고, 남을 것을 도적질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다하여 부활하신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성령을 거역한 죄는 물론이요 마음속으로 지었던 온갖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어,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설사, 인간이 아무리 선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선한 것이 될 수 없다. 인간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들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하는 말이고, 하나님 쪽에서 바라보게 되면 인간에게서는 절대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 만약 인간에게서 선한 것이 나올 것 같았으면 굳이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인간이 악에서 벗어나서 선해지려면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 계셔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선해질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선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는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성령은 아버지 영이요 그리스도는 아들의 영이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시는 일들도 각기 다르시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결코 선해질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서 마음속의 죄가 도말될 것 같았으면, 기독교인들도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겠지만,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이 결코 선해질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간이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죄 아래 사는 인간은 선()의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을 판단하고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으로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들 마음가운데 보내서 선()의 기준이 되게 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마음속에 없다면 어느 누구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을 함부로 판단하며 정죄하고 있다. 바리새인들도 이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는 자들은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를 하지만,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절대 남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자신이 먼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보지 못하며 살기 때문에 조금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면, 그것이 곧 자신의 의()가 되어 남을 함부로 비판하며 정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어둡던 인간의 마음을 밝은 빛으로 날마다 환하게 비춰 주시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날마다 주님 앞에 죄인이라며 고백하며 살게 된다. 사실은 이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된 가장 큰 은혜요 축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는 자들은 입술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켜서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일은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믿는 자라도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에 무조건 자신의 치부를 덮으려고 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권위와 명예가 한순간에 곤두박질치게 될까봐서 자신의 속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꺼내놓고 말하기란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렇게 믿는 자라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하기 때문에 죽은 영들은 인간들을 자기 마음대로 갖고 놀면서 자신의 하수인으로 이용하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목적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죄악을 찾아내서 죄인으로 손 들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스스로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꺼내놓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스스로 죄라고 느끼는 것이라고 해봐야 겨우 밖으로 드러난 죄만 가지고 죄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은 죄까지 모조리 찾아내서 죄라고 알려주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빛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는 항변할 수가 없다. 그동안 인간의 마음속에서 주인노릇을 하며 인간을 죄짓게 했던 죽은 영도 그리스도의 빛 앞에서는 더 이상 숨지 못하고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우리는 이제 겉으로 드러난 죄만 가지고 죄인이라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숨은 작은 죄까지도 모조리 찾아서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도 비로소 죄에서 자유하게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다. -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