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인간은 반드시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친반석 2016. 8. 21. 14:11

주일 낮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2:11-21

재목: 인간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죄악 속에서 태어난다. 죄악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평생 동안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다가 다시 지옥으로 가게 된다. 인간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죄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하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오랫동안 고행을 자처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런 고행을 통해서 잠시 육신의 소욕을 줄일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죄악 된 인간의 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가 자비와 사랑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육신적으로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육신적으로 베푸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그들이 베푸는 사랑 속에는 인간의 욕심이 숨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스님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대려다 돌보아 주고, 테레사 수녀가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 무소유자로 일생을 살았지만, 그들 역시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있는 죄인들이다.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남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도 속으로는 자신을 자랑하고 싶고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는 일들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죄 아래 사는 인간이 이런 것들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죄인들이 펼치는 것은 진실한 것이 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답시고 길거리에 나가 굶주린 자들에게 밥 퍼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육신적으로 보면 참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인들 역시 내심으로는 하늘의 상급이라도 바라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가? 만약 예수께서도 기독교인들처럼 하늘의 상급을 바라고 십자가에 죽었다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고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기 명예를 위해서 자기 몸을 대속 물로 내어준 것도 아니다. 이는 모두 죄 아래 갇힌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무조건 없이 자기 목숨을 내어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말로는 모두가 그리스도 사랑을 실천한다고 말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랑과 자기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벌이는 일에 불과하다. 진정한 사랑이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아무조건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살고 이웃도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아래 태어나서 율법을 지키며 살았기 때문에 자신들은 거룩한 성민이요 하나님 앞에 흠이 없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로 취급하였다. 자신들의 삶에 비해서 이방인들은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산다하여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거룩할 뿐,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율법을 거역한 죄인에 불과하다. 그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이 예수처럼 진짜 의인(義人)이었다면, 율법을 거역하여 몸에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도리어 병든 자들을 더러운 죄인들이라며 멀리하였다. 이것으로 그들은 의인(義人)이 아니고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런데 아니러니 한 것은 그들이 의인(義人)이 아니고 죄인이라면, 당연히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자칭 의인(義人)이라며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잘 했더라도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기에 죄에서 자유할 수 없다. 그들이 죄에서 자유한 자들이었다면 당연히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죄인을 멀리하는 것으로 봐서 그들은 아직 죄에서 자유한 자들이 아니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단순히 하나님 아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는 인간들과 달리 죄가 없었기 때문에 죄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수를 믿어야 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성령을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던 그들로서는 천국의 주인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육체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게 된다.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 뿐 아니라, 예수 이름을 부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값없이 선물로 보내주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인간들에게 값없이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시게 된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인간 곁을 떠나게 되자, 그때부터 마귀가 모든 인간을 자기 발아래 두고 임금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흠 없는 피가 마귀를 심판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인간 곁으로 돌아오게 되신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는 마귀를 멸하고, 아버지로 하여금 인간들을 다시 지배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도 값없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 해도,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어도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을 거듭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것과 율법도 없이 제멋대로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은 후,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적이 없이 제멋대로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 것은 순전히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아직도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선물로 보내주신 성령이 바로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방인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마지막 날 기독교인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만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들은 현제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시 오시는 것이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시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쉽게 정리하면,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우리가 보기에는 굉장히 쉬워 보이나,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율법으로만 의롭게 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율법을 범하고 다니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기가 절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칭 의인(義人)으로 여기던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고, 도리어 율법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저주로 병 들었던 자들과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하여 로마 앞잡이 노릇하던 세리와 살기 위해 자기 몸을 팔아야 했던 창기들이 보잘 것 없던 예수를 찾아와서 믿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셨던 피의 공로를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를 먼저 해결 받게 된다. 그 증거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선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성령이 도리어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된다. 성령을 선물 받은 이방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따르게 된다. 만약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죽은 후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생전에 반드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부활하신 예수를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믿게 되면,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게 된다.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게 되면, 예수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시게 된다. 이런 자가 바로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요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라면, 예수처럼 죄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남에게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기독교인들 중에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가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자도 없다.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와 종교가 다르면 무조건 정죄하거나 불신자들을 마귀새끼로 싸잡아 비판한다. 더 나아가 자기교단과 교리가 맞지 않으면 이 또한 이단으로 정죄한다. 기독교인들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도리어 죄인들을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그들이 죄인들을 멀리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절대 이런 짓은 할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는 그리스도의 특성을 따라 남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리어 죄인들을 불쌍히 여긴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그리스도의 본질대로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현재 기독교인들의 삶과 그리스도로 거듭 난자의 삶이 어떻게 다른가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이로써 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가가 좀 더 명확해졌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