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이라!

거친반석 2017. 8. 13. 17:26

주일 낮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4:14-21

제목: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이라!

 

바울이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그 능력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의 이 말은 아무리 세상 지식과 학문이 뛰어난 자가 그럴듯한 말로 교인들을 가르쳐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상 지식이 조금 부족하고 배운 학문이 비록 짧을지라도, 그의 가르침을 받아 속사람이 변화되었다면, 그가 곧 하나님 나라의 능력(그리스도)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이다. 과연 기독교인들 중에 이런 자가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직은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바울 같은 자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자가 없다.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자는, 말로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지닌 자이다.

 

바울이 당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을 기록한 것은, 당시 고린도 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자 모두가 뛸 듯이 기뻐하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중에는 바울과 동등 됨을 취하려 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며 고린도 인들의 능력(그리스도)을 알아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인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도 모르고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다가, 바울의 권유로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생각지도 못한 성령을 받고 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무척 기뻤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감격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당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천국 가는 길이 허락된 줄 알고 있다가, 자신들에게도 천국 가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러나 당시 고린도 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죽어라고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며 살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두 백성의 구원과정을 똑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곧장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과정이 각각 다르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고린도인들 역시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자신들도 바울처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되는 줄 알고 바울과 동등이라 여겼다. 바울은 그것을 알고 그들의 능력(그리스도가 그들 마음속에 있는지)을 알아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전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던 자이다. 그가 율법아래 살 때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까지 했던 자이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나중에 성령을 받고 180도로 회심을 하게 되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말은,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빛()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바울이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먼저 믿고 난 후, 나중에 성령을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성령을 먼저 받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른 것을 가지고 예수를 믿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성령을 먼저 받고,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를 믿게 되는데,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바울처럼 빛()으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어야 기독교인들은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도 들어오셨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판단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영()속에 오신다. 그동안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마귀가 예수를 죽이고 심판을 받아 세상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자,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간 곁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이다. 이런 원리로 우리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분은 성령이 아니라,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만약 인간의 마음속에 성령이 들어오시게 되면, 마음속에 죄를 잔뜩 품고 사는 기독교인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즉사하고 말게 된다. 그 이유는 죄인은 하나님을 절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부활하신 예수만이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기독교인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자신을 철저하게 죄인으로 낮추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방인으로 살던 자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 들에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값없이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신다. 그러나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방인들에게는 성령께서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성령의 법을 쫓아 살아야 하는 의무가 따르게 된다. 하나님 백성이 이 의무를 저버리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에 살아생전에 이 죄를 해결을 받아야 된다. 만약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되면,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악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에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여 어느 누구도 성령을 뜻대로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타락으로 가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제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끝에 가서 타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짓목사와 삯꾼목사들이 이렇게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배나 지옥 자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누구나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성도들을 가르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아무리 교인들을 가르쳐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며 죽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도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훌륭한 목사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크나큰 능력을 나타내는 자들도 많다. 그런데 죽도록 말씀을 가르쳤는데도 성도들의 겉만 번지르르 할뿐 속사람이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면, 목사들은 왜 그런지 한번쯤 깊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 역시 목사들을 통해 죽도록 성경 말씀을 들었는데도 자신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왜 그런지 자신을 깊이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잘못된 옛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기독교인들은 새 부대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속사람이 변화 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아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성령은 하나님 영이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결코 자신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

 

오늘날 아이큐가 뛰어난 목사가 성경을 달달달 외우고, 성령의 은사로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어떤 영혼도 살리지 못한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인간의 속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사단의 종이다. 율법사와 서기관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말씀을 가르쳤지만, 유대인 어느 누구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였겠는가? 그들은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체, 형제들 눈에 들어 있는 티끌만 보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오늘날 교인들은 가르치고 있는 목사들 또한 회칠한 무덤과 다를 봐 없다. 자신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도 해결 받지 못한 자들이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도 입만 열면 십자가의 도를 운운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보다 못한 자들은 자기 발등에 떼만도 못하게 여기고 있다. 이들은 자기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체, 형제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먼저 자기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빼내고 난 후에야 남을 가르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