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거친반석 2020. 10. 4. 15:10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9:9-13

제목: 내가 의인을 부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과 율법을 통해 자신들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예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예수를 이단괴수라며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로서는, 예수가 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있는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태는 당시 로마의 지시를 받아 자기 동족들에게서 세금을 가두어 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그런 일을 하고 있던 자들을 죄인으로 취급하였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란 자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다른 세리들과 더불어 밥까지 같이 먹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는 죄인을 멀리하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 아들이란 자가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는 결코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당시 바리새인들 입장에서는 예수가 하도 기이한 일들을 많이 행하고 다니니까 한편으로 그를 눈여겨보기도 하였지만, 저런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정말 메시아가 맞을까 하는 생각마져 싹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자신들과 맞는 부분이 한구석이라도 있어야 믿던지 말 던지 할 텐데, 자신들과 하나도 맞는 구석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읽은 많은 분들이 이런 의문을 한번쯤 가졌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왜 유대인들이 자신을 잘 믿을 수 있도록 처신을 올바르게 하실 것이지, 왜 저렇게 바리새인들이 오해 살만한 일들만 골라서 하고 다니실까? 그러나 이런 일은 인간 쪽에서 예수를 바라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생각이다. 이것을 예수 쪽에서 바라보게 되면, 예수가 하고 다니는 일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 뜻에 따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맞는 일이다. 마태 또한 비록 세관에 앉아 동족들에게 세금 거둬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도 그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마태의 마음을 보시고 자신을 쫓으라고 말하자, 마태가 즉시 세관 일을 버리고 예수를 쫓는 것에서, 마태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율법아래서 살아온 바리새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 아들이라는 자가 어떻게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냐?’는 것이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머리로 이해될 수 없는 문제다. 그만큼 서로가 상충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율법의 잣대로 보게 되면 분명히 예수는 율법을 범하고 다니는 죄인이다. 그러나 이를 예수 쪽에서 보게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가 율법을 거역할 죄인들이라서 예수를 통해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떨까?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크나큰 함정에 빠져 있다. 다시 말해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빠져 기독교인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논리는 이렇다. 자신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모든 죄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날마다 짓는 자범죄에 대해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날마다 먹고 마시는 죄를 실수정도로 취급하고 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를 어디서 찾는가하면, 신약성경에 “예수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죄에서 자유케 된다”는 말씀을 자신들에게 적용시켜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기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으로는 죄에서 자유롭게 될 수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자신을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으로 착각하여,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자신들도 죄에서 자유케 되어 의인(義人)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먼저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 율법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게 된다. 예수를 믿고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게 되면 유대인들 마음이 깨끗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께서 오셔서 죄가 없는 유대인들 마음을 지배하게 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를 두고 성경은 “죄에서 자유케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약성경은 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을 자신들에게 적용하여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성령을 받았더라도,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라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만 받아서는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에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다만,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으로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게 된다.

 

만약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죄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그런데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타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주장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놓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모두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기고만장하여 우쭐되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기고만장하여 우쭐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두 백성이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있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다가, 지금은 기독교인들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런 자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한다면 과연 기독교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단괴수라며 그리스도를 문전박대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척하던 것과 꼭 닮았다.

 

만약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어왔던 믿음은 모두 헛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로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철석같이 믿어왔던 그분은 과연 누구일까? 기독교인들의 행실로 보아 그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은 악한 영을 자신의 구세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구세주로 믿고 있던 악한영이 자신의 마음을 꽉 붙잡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거기서 좀처럼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다. 악한 영 또한 그런 자를 절대 놓아주지 않고 지옥까지 끌고 가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이다.

 

결국 예수님 당시만 바리새인들이 설치고 다녔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람만 바뀌었을 뿐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자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설치고 다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율법을 거역한 죄에서 구원하여 주러 오신 예수를 배척하더니만,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을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구원해 주러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단괴수라며 배척하는 것이다.

 

이루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나,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나 “내가 의인을 부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절대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있는 자들은 마태처럼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와서 믿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