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 오신 그리스도!

거친반석 2020. 12. 20. 14:33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25:31-46

제목: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 오신 그리스도!

 

이 세상은 마귀와 귀신이 인간들을 지배하고 있다보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또한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 자꾸만 높아져 가고 있다. 악한 영들은 인간의 마음을 부추켜서 자꾸만 높아지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들을 죄짓게 한다음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에게도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하던 마귀가, 이제는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자, 기독교인 모두가 거기에 넘어가서 입술로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악한 영들과 짝하며 살고 있다.

 

이천년전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럼 왜 가장 높은 곳에서 오신 하나님 아들이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서 태어나셨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만한 자들의 눈을 가려 하나님 아들을 못 믿게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들을 구원해주시기 위해서다. 세 번째, 장차 이방인들 앞에도 가장 낮은 자를 통해 가시겠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다.

 

당시 제사장이나 서기관, 율법사들이 살아가던 모습과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살아가던 예수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당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제사장들이 하는 말을 더 믿고 신봉할 것이지, 어느 누가 아무 직책도 없는 일개 촌놈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겠는가? 당시 너무도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신 예수가 아무리 큰 능력을 나타내더라도, 유대인들 눈에는 율법을 범하고 다니는 그를 귀신들린 자로 보았을 뿐,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사야 53장 말씀에 의하면, 예수는 체격도 작고 고운 모양도 없는 한마디로 너무도 못생겨서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었다고 나온다. 거기다 나사렛 촌놈이 율법까지 범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면 삼일 안에 다시 지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자의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자를 성령으로 잉태시켜 죄가 없게 만든 다음, 성령을 보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다.

 

선지자들을 통해 분명 메시아가 오신다고 말씀하였지만, 이렇게 꽁꽁 감춘어둔 메시아를 유대인들이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는가? 당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던 자들일수록 더더욱 구세주를 찾을 수 없도록 꼭꼭 숨겨 놓으셨다. 그럼 누가 예수를 찾아 왔을까? 율법을 거역하다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육체가 병든 자들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위해서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세리와 몸을 팔아 입에 풀칠하던 창기들이 예수를 찾아왔다.

 

그들도 사실은 예수를 믿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단지, 자기 몸이 병들어 죽게 생기자 살기 위해서 예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세리와 창기들도 자기 동족들에게 죄인이라며 따돌림을 당하자,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찾아왔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소문을 듣고 예수를 믿고자 해서 찾아오는 자들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그들의 죄를 단번에 사해주셨다. 그러자 병든 자들이 낫게 되었고, 세리와 창기들도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께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자범죄’를 사해주게 되면, 유대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가 단번에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게 되면, 성령이 오셔서 유대인들의 영(靈)을 지배하게 된다. 이로써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를 예수께서 먼저 사해주게 되면, 유대인들이 마음속으로 지은 죄가 도말된다. 그런 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유대인의 영(靈)속에 오신 성령께서 죄가 없는 유대인들 마음을 지배하게 되어, 다시는 죄를 못 짓게 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성령을 받고도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다른 모습이다.(이 부분은 아래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성경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말하고 있는 것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두고 하는 말로서, 유대인들이 예수 믿기가 힘든 것은 율법이 걸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들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누구나 율법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단번에 사함 받을 수 있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성령을 받으면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신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는 쉽지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이방인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반쪽 구원만 받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반쪽 구원은 이방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게 된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의 보호를 받고 태어나기 때문에, 처음 태어나서는 율법의 보호를 받아 마음속에 죄가 없다. 그러다가 율법을 하나둘 거역하게 되면 죄가 마음속에 하나 둘씩 쌓이게 된다. 그리하여 끝에 가서는 유대인들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율법의 완성자로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신 것이다. 죄아래 갇혀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단번에 해결 받게 된다. 그런 후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마지막에 ‘성령’을 받게 되면, 유대인들은 이것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태어난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를 마음속에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인격이 점점 형성되어 갈수록 세상의 모든 죄를 끌어들여 자기 것으로 삼는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갈 수록 그리고 세상을 많이 알 수록 죄악 또한 나이와 함께 점점 자라게 된다. 그리고는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주워 먹고, 돼지는 자기가 싼 똥위에 도로눕는 것을 비유로 하는 말이다.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이방인들이 전도를 받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오시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과정은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는 과정과 똑같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오시게 된 것이다. 이로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도 비로소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유대인들처럼 마음속의 죄가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악한 영들에게 감쪽같이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악한 영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결국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먼저 보내주시고, 율법아래서 이천년 동안 살게 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먼저 보내주시고,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이천년 동안 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 두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목적은 율법을 어겨 죄인이 된 유대인과 기독교인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 놓은 다음,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평하신 구원 방법이다.

 

유대인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듯이,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 또한 어느 누구도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결국 끝에 가면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모두가 죄인이 되고 만다. 결국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을 거역한 죄 아래 가두어 놓은 다음,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그리스도 영으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셔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높아져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마음이 높아져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던 것과 같다. 이렇게 마음이 높아진 자들 앞에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 그리스도가 오셨다. 예수께서 부드러운 옷입은 자는 왕궁에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 역시 전혀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이때 과연 기독교인들이 그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을까?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공중 재림에 앞서서 이 땅에 먼저 도적같이 오신다. 그 이유는 성령을 거역하여 죄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공중에 재림할 예수만 기다리고 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죄악 때문에 한 사람도 들림받지 못한다. 이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애서 도적같이 그리스도가 이 땅에 먼저 오신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낮고 천한 자를 통해 오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그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기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처럼,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 역시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자들은 더더욱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게 될까?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이 병든 자들과 세리와 창기처럼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과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여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찾게 될 것이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그런 자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던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그런 자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먼저 공중에 들림 받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처음 얼마동안은 겸손한 것 같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교만해진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신 자는 절대 교만해질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교만하게 하던 악한 영과 죄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자가 가장 천하고 낮은 자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자를 두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도 이를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이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사단의 특성을 따라서 인간이 자꾸만 높아지려고 한다. 율법아래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바리새인들의 의(義)가 충만했던 것도 같은 이치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의(義)가 충만하여 누구 말도 듣지 않으려 한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그리스도를께서 하신 말씀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마귀와 더불어 영벌에 처해지기 위해서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