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전13:1-13
제목: 모형을 실체로 오인하지 말라!
우리의 구원과정은 마치 건축업자가 아파트를 짓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먼저 지어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파트를 분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먼저 이스라엘의 구원과정을 살펴보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이스라엘 2천년 역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쓰임 받은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삭과 야곱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사사기에 나오는 모든 사사들과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다윗과 선지자들도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쓰임 받던 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방 여인이던 기생 라합을 비롯하여 다말과 룻도 모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쓰임 받던 자들이다. 이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보면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들이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생활을 답습하기만 하면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믿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 또한 믿음의 조상들이 하던 대로 따라 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온전케 되는 것으로 믿었다. 이것이 바로 어둠속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한계다.
히브리서는 이런 자들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서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이미 자신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 이방인의 구원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스라엘의 구원과정과 마찬가지로 건축업자가 온전한 집을 짓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먼저 지어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집을 분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예수님에게 열두 제가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제자가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사도바울을 선택 했던 것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은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예표에 주시는 그림이기도 하다.
바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를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보면,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회심을 경험한 후 천국복음을 전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그리스도 역시 이방인 중에서 미리 선택한 한 사람 속에 빛(영)으로 찾아오셔서, 그를 제자 삼아 사역을 펼치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에게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는 결국 이방인들 앞에 오실 때에도 사도 바울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 오시겠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으로 살던 바울이 회심을 경험한 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이방 기독교인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도 바울처럼 살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아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았을 뿐,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다보니 입으로 바울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펼치고 있는 사역은 모두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12:1-11절까지를 보면, 바울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만약 이방인들이 성령 받은 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질것 같았으면 바울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보다는 "구원받게 하심이라"고 기록하엿을 것이다. 이런 사실만 미루어 보아도 이방인들에게 보내주신 성령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이것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리하여 은사를 받은 자들은 자신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대단한 능력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오만 불손한 생각에 젖어 살다가 성도들의 환호속에 자신도 모르게 높아져 안하무인으로 날뛰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에게 은사를 회수당해서 나중에는 은사가 잘 나타나지 않게 되자, 성도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별라별 희한한 짓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설사, 어떤 자가 성령의 은사로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나타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성령의 은사로 나타내는 표적은 불신자를 믿게하여 땅에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사역에 불과하다. 하나님 백성을 먼저 만들어 놓아야 장차 아들이 오셔서, 그들 속에서 쭉정이는 버리고 알곡들을 골라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모두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하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전12:12-31절에서 인간의 몸을 예로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 말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 중에서 어떤 자는 귀의 역할을, 어떤 자는 눈의 역할을, 어떤 자는 손발의 역할을 담당하는 은사를 받은 자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그리스도라 말할 수 있는데,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로서는 그리스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성령의 은사는 결국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사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다음 바울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바울은 위 글에서 성령의 은사로 펼치는 사역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더욱 큰 은사란" 바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 사는 삶을 말한다.
바울은 고전13장에 가서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실체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이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그동안 성령의 은사로 하던 일들이 모두 폐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온전한 것이 왔기 때문에 그동안 부분적으로 하던 은사의 사역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방인들 앞에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매주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드리던 행위도 모두 그치게 될 것이다. 예수가 오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면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가 세워지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성전을 새로 짓는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의 구원과정을 건축업자가 지은 아파트로 설명하자면 “존경하는 주민 여러분! 그동안 모델하우스에서 사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니 그동안 살던 모델 하우스를 버리고 모두 새 아파트로 이사 가서 사십시오.”
그런데 사람들 모두가 꿈쩍도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모델하우스를 실제 아파트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림자에 불과한 현제의 신앙생활을 모두 실체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그것은 거짓 목사나 삯꾼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모델하우스에 불과한 현제의 신앙생활을 실제 아파트로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우리는 구원 받은 것이다” 라고 하는 말과 같은 원리다.
예수께서도 이런 경우를 빗대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그러나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이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마음속으로 성령 하나님께 간절이 기도하시면서 고전12장과 13장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하여 분별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크나큰 깨우침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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