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거친반석 2014. 1. 5. 13:19

본문: 요한복음:14:1-14

제목: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모두가 죄악 속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죄악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양자의 영인 그리스도 영을 받아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까닭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매 안식일마다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꺼리낌 없이 아버지로 부른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말씀을 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1,4)” 뜻을 풀어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참 형상이 아니므로 그런 행위로는 결코 인간의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죄가 도말 되는 것으로 믿었다.

 

하나님 아들은 오직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죄악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양자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는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공경한 나머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아들로 받아드리려면 적어도 법아래 살던 백성들이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원죄와 자범죄를 사함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죄 중에서 단, 한가지만 사함 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분이시다. 따라서 인간에게 티끌만한 죄가 남아 있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좋은 예로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삼상6:19)”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데 당시 밭에서 일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만 하나님의 법궤를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러자 그날 오만 칠십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분이시라, 죄인은 절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없는 것이다.

 

이렇게 온전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짐승을 잡아 인간의 죄가 도말될 것 같았으면 뭣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겠는가? 하나님께서도 짐승으로는 인간의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시기에 당신을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어도 짐승을 잡아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죄가 도말되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끝까지 율법에 따른 제사만 고집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준 아들을 믿지 않아서 멸망으로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이름을 믿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던 예수를 자신들은 믿었다는 것이고, 그 증거로 성령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인지는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직 기독교인들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여 법(죄)아래 살고 있는 백성(종)에 불과하다면, 유대인들이 법(죄)아래 살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던 모습과 똑같은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모든 죄가 깨끗이 도말되어지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독교인들이 매주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온갖 더러운 죄악들이 가득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아직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될 수없는 것이다.

 

현제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려면,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한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의 영으로써 이방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찾아내라고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마음속이 모두 부패하여 있는 것을 아시고, 성령의 밝은 빛을 통해서 이방인들 또한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성령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도 죄는 왕 노릇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을 받기전 이방인들이 가진 양심의 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1원을 훔쳐도 죄요 100만원을 훔쳐도 죄다”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미워만 해도 살인죄요" "여자를 보고 음심만 품어도 간음죄에 해당한다" 이런 원리에 따라 성령의 법 아래서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하나님 백성들을 모두 법(죄)아래 가두었다고 말한다. 이는 바로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그들을 죄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크나큰 은혜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들도 모두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다보니 자신들도 마치 양자의 영을 받은 것처럼 생각되어, 하나님을 스스럼없이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죄)아래 살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던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던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도 나를 아들로 인정하고 있느냐가 문제다.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어 아이 하나를 입양했다. 그러나 아직 그 아이를 정식으로 호적에 올리지는 않았다. 아이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그를 무조건 아버지로 부른다. 그 아이는 아직 법적인 아들이 아니다. 법적인 아들이 되지 못하면 그에게 어떤 상속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2:11-13)” 여기서 임금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며, 예복은 하나님 아들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임금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하고 묻는 말은, “내 아들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느냐?”고 묻는 말이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자마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라 아버지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들을 통해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사함 받고, 양자의 영을 받아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자범죄란 날마다 내가 성령을 거역하고 살았던 죄를 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나로 하여금 세상 것을 쫓아 살게 만들었던 죄를 말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런 자범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결코 자범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자범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이방인들 앞에 인격적으로 오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한다. 이방인들은 이렇게 오시는 아들을 믿을 때, 비로소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예수께서 말씀 하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닫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