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5:17-20
제목: 성령의 법과 율법의 의(義)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체에 주신 법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주신 법이다. 따라서 율법의 의(義)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열심히 제사(예배)만 드리면, 그것이 곧 믿음이요 구원에 이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아무런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을 믿고 성령을 받게 되자, 그때까지 아무런 법도 없이 제 멋대로 살던 이방인들이 성령(영적인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매주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열심히 예배(제사)만 드리면 그것이 곧 믿음이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사단)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나서 시내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할 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애굽(사단)의 법을 따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산에 이르러서야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고 보니, 그제야 비로소 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받고 기뻐하게 되었다. 그러나 율법을 받았다고 하여 곧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만약 법을 지키지 못할 경우 마지막에는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마치, 이방인들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사단의 하수인으로만 살다가, 마침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예수의 보혈)을 믿게 되자, 그때까지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아가던 이방인들이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아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사단의 백성으로 살던 자가 예수 이름을 믿고 d여적인 율법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의 자녀(구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도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만약 기독교인들도 법을 지키지 못할 경우 마지막에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죄악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자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두 백성(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법을 주신 이유는 그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다. 죄 아래 가두어 둔다고 하니까 혹자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인데 어찌 인간을 죄악 속에 가두어 둔단 말이오”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간을 먼저 죄악 속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당신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서 은혜를 베풀어줄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무조건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되 오직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자들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법을 먼저 보내주신 이유도, 믿는 백성들을 모두 죄인 만들어서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다.
믿는 당신의 백성들이 법을 못 지켜 모두 죄인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믿는 백성들 앞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 백성들이 아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긴 죄인이라고 이실직고하게 되면, 아들은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고 그들을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요 은혜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죽자 사자 예배당(성전)에 나가서 예수(소와 양)이름으로 예배(제사)만 드리면 무조건 자신들의 죄가 도말되어 모두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무지이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성전에 나가 예배드리는 행위는 법에 따라 드려지는 제사일 뿐, 실체가 아니라서 그런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자범죄가 없어지지 아니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열심히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인가? 그러나 그들이 드린 제사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결국 모형아래서 열심히 드린 제사가 자신들에게 도리어 의(義)로 둔갑하여, 천국의 주인인 예수가 눈앞에 있음에도 그들은 믿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배당에 모여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는 영적인 백성으로서 성령의 법에 따라 모형아래서 하나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린다 해도 자신들 마음속에 숨어있는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제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드리고 있는 예배는 성령의 법에 따라 하나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일 뿐, 아직 영적인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지 안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중에서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른 자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아무리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자라도 또는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옛 구습(죄악)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령을 아무리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 구습으로 돌아가는 이유도 바로 기독교인들이 아직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아래서 열심을 내면 낼수록 결국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의(義)만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 구원이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구원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이미 죄인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인간이 노력해서 얻는 구원이라면 이는 사단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답시고 자신의 의(義)를 쌓고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며칠 전 모 TV에 유명한 연예인이 나와서 자신은 자식이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입양하였으며 또한 못 먹고 못 입은 외국 어린이들을 위해서 약50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육신의 배고픈 자들을 위해서 빵이나 물질을 나눠주는 분이 아니다. 이런 육신에 일은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믿지 않는 자라도 세상에서 얼마든지 좋은 일, 착한 일,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을 주어야 하는 일이라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죄인인 인간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배고픈 자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그들을 주님 품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나 지금이나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기독교인들에게 각각 똑같은 율법과 성령의 법을 주어서, 그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둔 것은 바로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에게 똑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이 자신의 노력이나 열심 또는 교회에서 펼치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구원 받을 생각을 한다면 이는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렇게 율법의 열심(제사)으로 의롭게 되려다가, 결국에는 예수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제발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거울삼아 신앙생활 오래한 것으로 구원 받으려 하지 말고, 성령의 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아 장차 오실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진정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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