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7:1-8
제목: 말로 믿기는 쉬어도 마음으로 믿기는 어렵다.
우리 속담에 “말로 떡을 하면 조선 사람이 다 먹고도 남는다”고 했다. 이 속담은, 말로 하는 것은 쉬우나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사람이 입으로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마음도 없이 내뱉는 말이야 자신이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내뱉은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당장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아들은 인격적으로 오시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믿음이 성립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은 쉽게 부를 수 있어도, 기독교인들 앞에 인격적으로 오시는 아들은 쉽게 믿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 역시 입으로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아래서 약 2천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왔다.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 나가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열심히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짐승의 피와 살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기 때문에 모두가 천국에 이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성경은 짐승의 피와 살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율법의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죽어라고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속에서부터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들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줄 만큼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던 사람들이다. 이방인 눈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짜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었는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해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그들 앞에 보내주셨다. 만약 그들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었던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이 보낸 아들도 똑같이 잘 믿었을 것이나, 만약 하나님을 입술로만 믿었던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아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말씀대로 기한이 이르자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셨다. 그토록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찾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가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하여 하나님 아들로 믿지 않았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았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입을 빌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하나님을 말로 믿는 것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말로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아들은 인격적으로 오시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거짓이 금방 들통 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쉽게 믿는다고 말했으나, 하나님이 보낸 아들은 쉽게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을까?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입술로는 하나님 이름을 열심히 부르고 있지만, 진정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는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예수를 마음속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마음속으로 믿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인 모두가 마음이 부패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를 마음속으로 잘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순전히 입술로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정말 예수를 잘 믿고 있는지 안 믿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테스트 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야 우리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가 영으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도적같이 오셨을 때, 과연 기독교인들이 그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고 입으로만 믿다보니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그를 믿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입으로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던 자들은, 초라한 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그를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으로 기독교인들의 믿음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섭리를 알고 마귀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예수께서 흘려준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아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는 말은, 비로소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영적인 율법아래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주신 목적은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율법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죄를 찾아내야 장차 하나님께서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셨을 때, 그를 믿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과 같은 이치다.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율법아래 살게 되면 자동적으로 모두 죄 아래 갇히게 된다. 죄 아래 갇힌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시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가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율법(성령)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죄를 찾아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논리에 빠져 있다. 그리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것을 믿음의 척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누가 주일성수와 십일조와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잘 다녔는가를 가지고 믿음의 기준을 삼고 있다. 이는 인간이 정해놓은 믿음의 기준일 뿐 하나님께서 정한 믿음의 기준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성령의 법)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이런 생활을 잘했다고 하여 혹은 못했다고 하여 믿음이 좋고 나쁨을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척도는 오직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누가 믿고, 누가 믿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믿음을 판가름 할 수 있다. 따라서 믿음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할 뿐, 한줌의 흙덩이에 불과한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예배만 드리면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해져서 영생에 이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데서 오는 무지이다. 유대인들도 성전에 나가 무조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영생에 이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데서 오는 무지 때문에 그런 우를 범했던 것이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도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이나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제아무리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많이 불러도 기독교인 스스로 지은 죄(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을 수는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 앞에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얼굴을 뵐 수 없게 된다.
예수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오실 때에는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영으로 오시게 되는데, 이때 기독교인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와 목사들은 겉이 화려하지만, 그리스도 영을 받아 오는 아들은 겉이 화려 않는 대신 속이 꽉차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가 하는 말을 먼저 들어본 다음에 “말씀이 그러한가? 아니한가?”를 반드시 따져보고 믿어야 한다. 요즘 너도 나도 예수 영을 받았다며 가짜 예수들이 도처에서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성도들로서는 영분별이 안 되기 때문에 가짜 예수들을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참고로 성령은 예수 영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서는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없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법아래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마저 없었다면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불신자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은 이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자범죄를 해결하러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입술로 주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주님을 찾고 구하는 자가 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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