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10:1-18
제목: 종교적 행위와 아들을 믿고 영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따라 성전에 나가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행위를 종교적 행위라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에 따라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행위 또한 종교적인 행위라 부릅니다. 종교적인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행위로는 인간의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2천년 동안 율법의 규례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가 하나도 도말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으로 제사를 드려서 그들의 죄가 도말될 것 같았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짐승의 피와 살이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죄 없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율법에 따라 짐승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자신의 죄가 모두 도말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율법은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율법사 그리고 서기관들 모두가 바리새파 출신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 모두를 하나님 법아래 가두어 죄인을 만든 다음, 마지막에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인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미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으니,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바리새파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위만 열심히 하다가 끝내는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갔던 것입니다. ‘종교적 열심히 주의 전을 삼키리라’ 한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한말입니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에 따라 예배당에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 또한 모두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없이 그동안 세상 법에 억매여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법인 영적인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영적인 율법이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법으로서, 이방인들이 지금까지는 세상 법(사단)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으며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누 누구도 성령의 법을 온전히 따라 살자가 없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도 마지막에 가서는 유대인들처럼 모두가 타락한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모두가 끝에 가서 타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계획하신 일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모두가 죄인이 되어야 장차 하나님께서 영적인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할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들은 유대인과 달리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절대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받은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로서 아버지의 영입니다(마10:20) 따라서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합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거듭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거듭날 수 없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으로 거듭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바울이 기록한 이 말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마귀에게 속아서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바울이 기록한 이 말을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알맞게 적용하면, “성령의 법으로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거듭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는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면 금방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있는 자는 절대로 세상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아등바등 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육체에 부어주셨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을 마음속에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법을 ‘영적인 율법’이라 부릅니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고 신앙생활 하지만,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마음속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을 살피지 않고 자꾸만 겉을 착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은 어딘가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은 더러운데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거짓입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이런 자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영적인 율법에 따라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이방인들 모두가 마음이 부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사람들 눈을 의식해서 겉모습을 치장하다보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인 백성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알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을 수 없게 되므로 결국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자신을 깨닫지 못한 자는 결국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평생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죄를 찾아야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알고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 영생에 들어가게 될 터인데, 자꾸만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도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거짓 목사들까지 나타나서 “우리는 예수 믿고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라며 성도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 영은 받은 자들은, “자기 마음속에 예수가 있어서 자신들이 하는 말이 곧 예수께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로서는 구원 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보니, 이런 자들이 들려주는 말에 감쪽같이 속아 거짓을 사실로 믿게 됩니다. 거짓을 사실로 믿게 되면 마귀는 그런 자들의 마음을 붙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했던 것은 자신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신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을 의롭다고 한 나머지 예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마귀가 강퍅한 바리새인의 마음을 붙잡고 계속해서 놓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세리와 창기들은 자신을 더러운 죄인이라 인정하고 마귀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예수 품에 안겼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가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죄악을 주님 앞에서 좀처럼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마귀가 강퍅한 기독교인의 마음을 붙잡고 계속해서 놓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주님 앞에서는 어떤 변명이나 핑계가 있을 수 없고 오직 ‘예’ ‘아니오’만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기독교인들은 영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마귀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자는 마귀와 더불어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하나님을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에 따라 드리는 제사로는 인간의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인간이 의롭게 될 것 같았으면 이스라엘 땅에 예수가 육체를 입고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에 따라 예배당에서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많은 예배를 드려도, 그런 종교적인 행위로는 기독교인의 검은 속마음을 희게 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기독교인의 마음속이 온전케 될 것 같았으면 예수가 영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 다시 보내주시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현재 성령을 거역한 죄 아래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주기 위해서 예수께서 영으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이방인들 앞에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예수께서도 직접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를 두고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예수로 잘못 알고 있는데,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는 세상 끝 날에 오시는 것이고, 그러기 전에 예수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셔서 죄인들을 먼저 구원하시게 됩니다. 그런 후에 마지막 날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셔서 땅에서 구원 받은 자들을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싫던 좋던 간에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비로소 온전한 알곡으로 인침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시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자들 마음속에 영으로 직접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성소인 우리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비로소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입니다.
말세에는 적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들이 도처에 나타나서 자기 속에도 예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합니다. 그들 속에 예수가 있다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말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인간 속에 숨은 죄악에 대하여 전혀 밝혀내지를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가장한 귀신의 영이 거짓으로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 예수와 비슷한 흉내를 내면서 인간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과 이곳에서 하고 있는 말을 한번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글을 읽다보면 어느 것이 진리인지 금방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종교적인 행위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영으로 오시는 아들을 믿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영생하는 길입니다. 혹시 이를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에게는 절대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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