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9:35-38
제목: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루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 자식이 없던 그에게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를 주시고, 약속의 자녀인 이삭과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자신들도 당연히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녀라도 육신의 자녀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백성이라도 육신의 자녀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한 뒤 시내산에 이르러서야 여호와로부터 율법을 받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레위기를 보면, 사실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이 율법을 지키기란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게도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성령의 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성령의 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할뿐, 인간의 어느 것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스라엘 2천년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갑자기 목수 아들이 나타나서, 자신을 하나님 아들이라 말하며, “이스라엘은 모두가 나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코웃음을 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생각으로는, 인간이 하나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사해져서 천국에 이르게 될 줄 믿었다. 당시 기라성 같은 율법학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선지자들이 그토록 많은 예언을 하고 있지만, 메시가 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땅에 사는 인간의 한계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분명히 알곡인줄 알았다. 그리하여 천국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들이 먼저 들어가게 될 줄 믿었다. 그런데 추수하러 오신 예수를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알곡이 아니라, 그들 중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알곡들을 수확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말씀하신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생각으로는, 남의 것을 토색하거나 불법으로 편취한 일이 없고, 거기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던 바리새인들이 당연히 알곡으로 분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쭉정이로 버려지고, 도리어 남의 것을 토색하던 세리와 자신의 몸을 돈 버는데 사용하던 창기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고 먼저 알곡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다. 이를 두고 바리새인들은 인정할 수 없다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설교 할 때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유대 지도자들로서는 율법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 했고, 백성들 또한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다. 땅에 사는 인간이 제아무리 머리가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하다 해도 하늘나라는 결코 인간의 머리로 이해되는 곳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주신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인들도 모르고 있기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만 받으면 모두가 구원 받은 줄 알고 있겠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데서 오는 무식의 소치이다.
하나님 백성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지 못하여 모두가 하나님 법아래 갇히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법아래 갇힌 죄인(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법도 없이 제멋대로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아 예수 이름을 부르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것을 가지고 모두가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들이 첫 것으로 주신 성령의 법만 생각할 뿐, 둘째 것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예수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해결 받았으면, 당연히 성령의 법을 거역한 자범죄도 해결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제 겨우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은 것을 가지고, 천국 갈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 스스로 소경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는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것은 기독교인들 스스로 지은 죄이다. 기독교인 스스로 지은 자범죄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만 부르면 다 해결해 주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던가?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예배를 통해서 자신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가 단 하나라도 사라졌던가? 아직도 처음 모습 그대로 모두 남아 있지 않던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적어도 자신들에게 주신 성령의 법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법을 주신 것을 가지고 모두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다. 유대인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러나 이때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이방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 영이며, 그리스도 영은 아들의 영이다. 따라서 아직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죽은 영이 자리 잡고 있을 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영이 기독교인들을 계속해서 속이며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조차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제 교인들이 배나 지옥 자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다. 결국 이방인들도 나중에는 모두 죄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죄 아래 가두는 방법이다. 죄 아래 가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 앞에도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게 된다. 그리하여 이방인들 앞에도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이 오시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오시는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가 도말되어 천국에 이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소와 양(예수)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죄가 도말되어 천국에 이를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대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육체에 주신 율법은,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의 모형으로 주신 것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유대인들은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성령의 법으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말하는지,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공평성에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은 그동안 온갖 고난을 겪으며 율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다가 겨우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 이름을 부르고 천국에 먼저 들어간다면, 온갖 고생을 하며 율법을 지켜온 유대인들이 얼마나 억울해 하겠는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만약 기독교인들이 약2천년 동안 성령을 따라 살기 위해서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살았는데,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없이 제 멋대로 살던 불신자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 이름을 부르고 천국에 먼저 들어간다면 기독교인들 또한 얼마나 억울해 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신 분이다. 이스라엘이 율법 아래서 2천년 동안 살다가 마지막에 보내주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방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 동안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영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원죄와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하는데, 이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해결 받지 못하면 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해결 받은 것은 원죄뿐이다. 그 증거로 성령이 오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해서 자범죄를 범한 것이다. 이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기독교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서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한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율법을 거역한 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스스로 지은 자범죄요. 예수가 흘려주신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죄를 사하게 되어 성령이 오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율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때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방인들도 비로소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한 기독교 역사가 오늘날까지 약2천년이 흘렀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인간의 영속에 오신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역자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불신자들을 상대로 전도를 하여,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들을 모두 하나님 백성 삼았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여 무조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법(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지만,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을 따라 살자가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현제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힌 죄인들이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도 당신의 아들을 다시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가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영적인 분이 되셨다. 영으로 계신 예수가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갔던 일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다. 영으로 오신 예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방인들 앞에도 기독교인들의 자범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가 영으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예수가 영으로 오실 때 이방인 가운데서 한 사람을 미리 선택하여,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 하신다. 기독교인들은 싫던 좋던 간에 이렇게 오시는 아들을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고 비로소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예수는 하늘에 계시는 분인데 어떻게 사람 속에 다시 오실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는 이미 성령을 통해서 오셨다고 말한다.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한분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령안에 예수도 함께 계시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기독교인들이 말한 대로 정말로 성령을 통해서 예수가 오셨다면, 기독교인들은 절대 타락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인간의 주인으로 오시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으로 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법으로 오시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으로 가더라도 그것을 막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을 성령의 법(죄)아래 가두기 위해서, 성령을 먼저 보내주셨는데, 법을 어긴 자들을 성령께서 관섭하신다면 어떻게 기독교인들을 법아래 가두어 둘 수 있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타락으로 가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은, 장차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른 점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면 이런 말씀도 어렵게만 들릴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말씀 하신다. 과연 이 말씀이 꼭 유대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겠는가? 유대인들 속에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속에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마지막 가을 추수작업이다. 이 사역은 반드시 영으로 오시는 아들을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 바로 계시록이 말하는 주의 영을 받은 자들이요 마지막에 나타날 하나님 아들들이다.
기독교인들 또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현제 자신들 모두가 알곡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소와 양(예수)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도 알곡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2천년 동안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렸다 해도, 그런 행위로는 결코 알곡이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스스로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고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하나님 곡간에 들어갈 알곡이 되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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