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

거친반석 2015. 11. 1. 13:33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21:23-32

제목: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모두 죄악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의인(義人)은 단 한사람도 없다. 따라서 이 죄악은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통해서만 해결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율법아래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민이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율법대로 살면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믿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해주려고 주신 법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몸이 병들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율법을 거역한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육체가 병들게 되었다.

 

이스라엘 2천년 역사가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대로 어김없이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셨다. 그러나 자신의 몸이 병들지 않아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과는 반대로 율법을 거역하여 몸에 병든 자들은 육신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예수를 찾아와서 병든 몸을 치료받았다. 결국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 죄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고, 도리어 율법을 거역하여 몸이 병 들었던 자들이 예수를 찾아와서 죄 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들에게야 의원이 필요 있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 하신 말씀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께 대하여 무슨 권세로 병든 자들을 고치고, 이적을 행하며 더 나아가서 사람들을 가르치느냐며 따져 묻는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을 깨우쳐 줄 요량으로,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이르기를 애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예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않고, 둘째 아들에게도 이와 똑같이 말하니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이 둘 중에 누가 더 아비로 뜻대로 하였겠느냐?”며 묻는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둘째 아들이니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말씀 하시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이 땅에서 인간들이 아무리 높은 감투를 쓰고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그것으로는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 자들이라서 예수가 왜 자신들에게 필요한 분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리와 창기는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 로마군 앞잡이 노릇을 하고, 창기 노릇을 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행실을 보면서 그것을 죄로 여기고 예수를 찾아와서 죄 문제를 해결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예수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배가 고픈 사람은 무슨 밥을 주던지 감사함으로 받아먹는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것을 갖다 주어도 먹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당장 자신에게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에 천하고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교만한 자와 높은 자리에 않은 자들은 천국 들어가기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법이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기 위해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법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의 신앙생활을 관리감독 하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구원의 영(그리스도 영)으로 생각하여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구약에서는 천사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영적인 율법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모두가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죄악(죽은 영)을 가지고 태어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만들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어둠속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뜻과는 정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하면 육체가 병들게 되지만,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라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마음속이 병들게 된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속이 병들어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속에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중병에 거린 환자가 정작 자기 병명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 앞에 아무리 좋은 의사를 보내주어도 그런 자는 치료받기를 거부하게 된다. 자신의 병명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보이고 병을 치료받고 싶겠는가? 기독교인들은 마음의 병만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소경에다 영적인 귀머거리요 영적으로는 이미 죽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으니까 살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의 병(죄악)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께서 그리스도 영이 되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셔야 한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도 깨어있으라 내가 도적 같이 가리라말씀하시고 있다.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시 오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의 병을 숨긴 체 육신이 건강하다고 하여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유대인들의 예에서 보았듯이 육신이 건강한 자들은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이 병 들었다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찾게 될 것이다. 마음속의 병은 이 세상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이 보내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법으로 의롭게 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으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어도 그런 자들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왜 예수를 배척하고 믿지 않았던 것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들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보면서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고 있다. 남의 눈의 티는 그렇게도 잘 보면서 자신의 죄악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자신의 마음속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고 다니면 그것이 자신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겉으로 좀 부족하고 못나보여도 마음속에 생명(그리스도)이 있는 자들은 결코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썩어 없어질 것들은 항상 겉이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그들은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겉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보라! 그가 하나님 아들이지만 자신을 높인 적도 없고 자신을 꾸미고 다닌 적도 없다. 그는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며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한 몸에 받고 다녔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죄가 없기 때문에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가진 자의 모습이다. 여러분들은 현재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