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말씀
본문: 요한복음3:1-15
제목: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관원이 사람들 눈을 피해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은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고 묻는다. 그러자 또다시 예수께서 “진실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말씀 하신다.
사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알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당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로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그래서 당시 니고데모가 거듭난다는 말을 어머님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께 묻기를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사실 니고데모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느 누구도 이해 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곧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구약 성경 어디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단 한군데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구약성경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신약성경을 비교해보면 온통 모순투성이다. 구약성경에서 ‘무엇은 하라’고 기록해 놓았다면, 예수께서는 신약성경에는 정 반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리고 ‘하지 말라’고 했던 말씀은 도리어 ‘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가령, 율법이 원수를 미워하라고 되어 있다면, 예수께서는 도리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라고 되어 있지만, 예수께서는 도리어 성전을 헐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도저히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구약에서 이렇게 율법을 강조한 것은 결국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점을 깨닫고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아무리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던 선지자라도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 그들이 인간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물과 성령’이란 말을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과 또한 성령이 임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메시아가 오셔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그리고 성령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임하게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체, 그저 성령께서 감동주시는 대로 성경에 기록했던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2천년 동안 율법아래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율법은 육체에 주신 법으로서 하나님 백성들이 지키고 살아야할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나 죄악 속에 태어난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율법을 지키고자 열심을 내면 낼수록 인간의 의(義)만 더 나오게 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아래 가둔 다음, 마지막에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던 바리새인들이 더욱더 자신을 의롭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똑같이 ‘영적인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 하고 있다. 예수께서 신약성경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까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분이 누구인지도 모른 체 그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보고,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예수 믿는 이방인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야 이방인들도 비로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곧장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 백성이라면 당연히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영적인 율법이란?” 기독교인들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보고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의 법만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겨우 ‘원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된 것에 불과하다. 기독교인들도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온전케 되어 영생에 이르려면,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물과 성령”이 아니라, “성령(피)과 그리스도(물)”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없이는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주님을 볼 수 없다.
예수께서 신약성경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일차적으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물”은 예수 육체를 두고 하는 말로서 죄를 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유대인들은 누구나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된다. 그러나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로서는 자신들과는 정 반대로 행동하고 다니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오직 육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게 되어, 그것이 결국은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구약에서도 선지자들을 통해서 활동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예수께서 피 흘려주시기 전이라 인간의 ‘원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하나님)께서 인간의 영을 직접 지배하지 못하고 인간의 몸 밖에서 감화 감동으로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넣어 주셨다. 그러던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세상 임금인 마귀가 심판을 받고 떠나자, 성령(하나님)께서 인간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물(몸)과 성령(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여기까지가 바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구원과정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고 있다. 다시 말해 모두가 여기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만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바로 잡아주셔야 한다.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이를 설명할 수가 없다. 예수님 당시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어도 성경을 이해할 수 없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내노라 하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어도 결코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사람이 없다. 기독교인들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성경의 뜻을 바로 알고 있는 자가 있었더라면, 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주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까지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은 이렇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도 ‘예수 살’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된 것이다. 이때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이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면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죽은 영’이 방해를 하고 있어서,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타락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께서 ‘그리스도 영’이 되어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하여 영으로 다시 오신 것이다.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예수 살’을 먹게 되는 과정이다. 이를 정리하면,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마지막에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성령(피)과 그리스도(물)”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오직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성령을 충만히 받아도 결코 성령 받은 것만으로는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죄인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성령과 더불어 기독교 2천년 역시 마지막에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성령(피)과 그리스도(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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