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말씀
본문: 요한복음5:1-9
제목: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루살렘 근처 베데스다 연못에 천사가 가끔씩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물이 동한 후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되는 것이다. 이 소문을 듣고 병을 낫고자 하는 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수많은 병자들이 물의 동함(물이 사라지는 현상)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38년 된 병자도 누워 누군가 자기를 연못에 대려다 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그의 병이 오래됨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며 묻는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말씀 하신다. 그러자 그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보면서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정작 38년 된 병자를 왜 고쳐주셨는가? 하는 것은 뒷전이다. 분명 그곳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왜 38년 된 병자만 고쳐주셨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만 이야기할 뿐, 정작 예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전혀 헤아려보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게 되니 정작 자신이 깨달아야할 본질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속사람을 보지 않고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 쫓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을 받은 백성들이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죄를 찾으려고 해야지 겉에서 죄를 찾으려 한다면 바리새인처럼 의인(義人)이 되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기적이나 베푸시는 분으로 보게 되면, 그런 자는 입으로만 예수 이름을 부를 뿐 속사람은 썩을 대로 썩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하늘나라와 전혀 상관없는 자이다. 기독교인들이 적어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왜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는 고쳐주면서, 그곳에 남아 있던 수많은 병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셨는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처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성경은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예수보다도 모세나 엘리야 다니엘 같은 선지자들을 더 흠모하고 공경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보다 훨씬 더 큰 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홍해바다를 가르고,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리고, 다니엘이 사자 입을 막는 이적을 나타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로 말미암아 하나의 표적을 보여주었을 뿐, 그것으로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더 큰 것으로 여기고, 정작 예수께서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은 작게 보았던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보다 더 큰 이적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우매한 백성들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 쫓았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해줄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흠모하고 공경하기 보다는, 자신의 사업이나 잘되게 해주고 육신의 병이나 고쳐주는 자들을 더 흠모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경도 온통 그런 눈으로 보게 되어 오늘날에도 예수의 기적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예수의 기적만 바라는 자들이라서 자꾸만 눈에 보이는 현상만 쫓기 때문에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 힘든 것이다.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는 결코 눈에 보이는 기적을 베풀어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다. 그가 다시 오시는 이유는, 이방인들 마음속 깊이 뿌리박힌 죄악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이 죄악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의 나이횟수만큼 깊이 뿌리내려서 자란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큰 나무를 베어내도 그루터기와 그 뿌리는 살아 있다. 그 뿌리가 살아 있으면 언제든지 싹은 다시 올라온다. 따라서 그 뿌리까지 완전히 캐내기 전에는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인간의 죄악도 마찬가지다. 곁가지 몇 개 처냈다고 나무가 말라죽지 않듯이, 인간의 죄악은 너무나 끈질겨서 몇 가지 회개하였다고 하여 죄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지금까지 수천 날을 회개하며 살았다고 해도 결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은 사라지지 않는다. 회개할 때만 죄가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죽은 영’(죄)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몰아내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어느 누구도 온전케 될 수 없다. 따라서 천국도 들어가지 못한다. 죄인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세상에 보내주시는가? 그것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육신을 입은 아들을 보내주셨고,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기독교인들 앞에는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 오시기 전에 종들을 통해서 펼쳤던 사역들은 모두 장차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시기 위한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다. 모세, 엘리야, 다니엘 등이 모두 장차 오실 예수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라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로 크나큰 이적과 기사로 표적을 보여주게 했던 것들 또한 모두 장차 오실 영적인 아들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모세나 엘리야 다니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듯이, 오늘날 제아무리 성령으로 크게 쓰임 받던 종들이라도 결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줄 분은 오직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그렇다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아무나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38년 된 병자처럼 자신의 마음속에서 낫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예수의 눈길을 받지 못했던 것은 그들 마음이 38년 된 병자보다 간절한 마음이 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병든 자가 예수를 찾아왔을 때와 예수께서 병든 자를 찾아갔을 때 은혜 베푸는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병든 자가 예수를 찾아왔을 때는 모두다 고쳐주시지만, 예수께서 병든 자를 찾아갔을 때는 오직 그중에서 간절한 자에게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한번쯤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역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처럼 똑같은 사역을 하신다. 하지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육신의 죄를 해결해주러 오신 것이 아니고 마음속의 죄를 해결해주러 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속의 죄를 들고 나오는 자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시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 받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는 도리어 그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하여 그를 더욱더 힘들게 한다. 그래야 자신의 죄악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그리스도와 대항해 싸우게 될 것이다. 이로써 자신이 결국 악한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려올 때 자신이 기분 나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악하다는 증거이다. ‘죽은 영’도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고 있어서 자신을 주장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사건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에 이유를 달고 따지고 싶은 것이다. ‘죽은 영’이 인간을 통해 그리스도라도 자신의 의견을 수렴해 주고 자기주장을 좀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일반 교회 목사들 같으면 ‘죽은 영’의 소리에 백발백중 다 넘어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하는 말을 무시해 버리고, 도리어 나의 말을 들으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죽은 영’도 기분 나쁘다며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이런 자는 ‘죽은 영’에게 철저하게 쓰임 받고 있는 자이다. 죽은 영에게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자이다. 그런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자가 있음을 잊지 말라!
여러분들에게 38년 된 병자처럼 낫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던 수많은 병자들처럼 천사가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문제도 해결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여러분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거든 간절한 마음으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사모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사모하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그분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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