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1:6-10
제목: 다른 복음은 없나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쫓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1:6-9).
여기서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란? 유대인들이 전해주는 복음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왜 유대인들이 전해주는 복음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자”고 하는 말이 왜 잘못된 복음일까?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자”고 하는 말을 얼핏 들으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마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도,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자”고 하는 말이 왜 잘못된 복음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자”고 하는 말은, 마치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를 믿을 수 없고, 예수를 믿는 자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예수는 율법의 마침이 되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에, 예수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안식일에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야 영생에 이르는 줄 알기 때문에,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 저주라는 것이다.
히브리서10장을 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갈라디아3장에도 보면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8:7절에도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다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율법의 임무는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주는 역할만 한 것이다. 율법은 우리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결국 율법을 통해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그동안 율법아래 살면서 율법을 거역한 죄를 짓고 살았던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고 거듭난 자들이라면 더 이상 율법아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아 여전히 율법아래 머물러 있던 유대인들이 “율법도 지키고 예수도 믿자”며 계속하여 회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런 자들을 두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심지어 하늘의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당당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올바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표면상으로 보아서는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 역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독교인들에게서 복음이 완성되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까지 모두 도말되었다면, 복음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옛 사람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았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옛 구습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곧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요 더 나아가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 발아래서 나온 하나님 백성들에게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 법아래서 살게 하신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죄를 완전히 도말하려면, 적어도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빛(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아직까지 성령의 법아래 머물고 있는 죄인들이라서 온전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현제 기독교인들이 전하고 있는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을 부르도록 하여, 땅에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들 속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알곡들을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 백성(기독교인)들 속에서 알곡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실 분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사람을 통해 오셔서 하시게 된다. 그렇다면 알곡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가? 먼저는 성령의 법아래 살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자기 멋대로 살게 되면, 그는 자동적으로 성령의 법아래 갇히게 된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자동적으로 율법아래 갇히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성령의 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중에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고 그리스도 앞에서 고백하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주시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빛(영)으로 직접 들어가신다.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요 하나님 곡간에 들어갈 알곡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서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게 되면, 결국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알곡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기독교인들 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아직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줘도 기독교인들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어 기독교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면, 그때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 그때야 오늘의 이 말씀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게 될 것이다. 그때 성령의 법아래 머물던 자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에게 찾아와서, “우리 성령의 법도 지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도 믿자”고 적당한 타협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타협안을 제시하는 것은 성령의 법아래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당장에 자신의 삶이 달라지게 된다. 이때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에게 제시하는 타협안이 바로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여전히 사람 손으로 지은 건물에 나가서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거기다 새벽기도와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철야까지 빠지지 말고 드려야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성찬식 때마다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야 하며, 성탄절이나 부활절과 같은 절기들을 모두 다 지켜야 한다. 이런 법을 다 지켜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도리어 죄만 더 짓게 되는 것이 하나님 법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법이란 이렇게 백가지 중에서 단, 한 가지만 못 지켜도 모든 법을 어기게 된다. 이래서 법아래 머물러 있는 자들은 날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나 “성령의 법”아래 머물러 있는 자들을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해결해 주시고자 하여 당신의 아들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앞에 각각 다시 보내주셨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시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을 머리에 이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도 그것이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완성자로 예수가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 믿기를 거부하고 율법아래 머물러 있다가 율법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의 완성자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 믿기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성령의 법”아래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의 법은 곧 하나님 법이다. 따라서 하나님 법에는 용서가 없다. 하나님 법에는 용서가 없기 때문에,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고,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지 않더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죄악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 법아래 가두어 두기 위해서, 일부러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법을 주셨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같이 하나님 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었다며 구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원 받았다면, 구원 받은 자의 마음속에는 죄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 마음속에 여전히 죄악이 가득하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들 것은 지나갔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전하는 복음이라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도말하여 주신다. 그런 복음을 듣고 받아들어야 자신이 알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는 자가 전하는 복음은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그런 복음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런 복음은 천국 복음이라 말할 수 없다. 천국복음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전하는 말씀이라야 죽은 영혼을 살리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말씀임을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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