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로마서3:19-31
제목: 성령의 법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3:19-24).
바울은 본문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였지만, 율법은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할 뿐,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려 하지만, 성령을 주신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할 뿐, 성령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고 온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고 이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하나님 백성들을 죄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다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이를 두고 바울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 주셨고, 오늘날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주셨다.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바울 역시 율법이 자신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러다 다메섹 도상에서 영(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율법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인간은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니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이 율법과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바울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사사건건 예수가 하는 일에 시비를 걸고 방해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 하던 행동들을 보면 가관이 아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이단이라며 잡아다 옥에 가두고,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를 통해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바로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살던 바울의 예전 모습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바울의 예전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토록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후 180도로 변하여 도리어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믿어야 한다며 복음을 전하고 다니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인 몇 명이 바울이 말씀 전하는 곳을 찾아가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문밖을 지켰다고 한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완전히 미친놈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배신한 이단의 괴수다. 그러니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바울이 눈엣가시처럼 여겼겠는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되고 만다.
바울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고 말하고 있다. 당시 바울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던 짓이 조금도 잘못되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유대인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도 율법으로는 조금도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자이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지를 않나,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지를 않나 참으로 고약한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도리어 그를 택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자로 삼았다.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바울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장차 이방인들 앞에 가시게 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이나 예표를 통해 미리 보여주신 후 일을 진행하신다.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바울을 통해 미리 예표로 보여주신 후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도 바울이 사울로 살 때처럼 아주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혹시 바울처럼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십중팔구 바울처럼 자기 의(義)를 쌓고 있는 자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 아래서 하는 신앙 생활은, 성령을 통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신앙 생활에 불과하다. 그런데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가 열심을 내면 어찌 되겠는가? 도리어 자기 의(義)만 쌓게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는 신앙 생활은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형 아래서 하는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면 낼 수록 자기 의만 쌓게 된다.
바울도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열심을 내다보니 자기 의(義)만 쌓게 되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했던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가 열심을 내면 낼 수록 오히려 자기 의(義)만 쌓게 되어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열심을 내는 것 또한 모두가 자기 의를 쌓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들도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자신의 의(義)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자부심 때문에 자신의 의(義)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마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 모습과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당시 바울이 자신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행동 하였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누구도 성령을 주신 목적을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인데, 이방인들이 이를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 아직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가 신앙 생활에 열심을 내면 어떻게 될까? 이런 자는 열심을 내면 낼수록 도리어 자신의 의(義)만 쌓게 되어 결국은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게 된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에 바로 이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그토록 핍박했던 것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바울이 율법 아래 살던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겠지만, 만약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죽은 영’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불신자들의 영혼은 마귀와 '죽은 영(귀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 것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역시 불신자와 똑같이 세상 것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러고 있을까?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영(靈)은 마귀 발 아래서 나왔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의 혼(魂)은 '죽은 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불신자들 입장에서는, 예수 믿는 기독교인이나 자신들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욕하며 비난 하는 것이다.
불신자들 입장에서는 왜 예수와 같은 사랑(희생)을 자신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마구마구 돌팔매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가 왕 노릇 하고 있기 때문에 불신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결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 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속 마음은 불신자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예수가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사랑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하여 주신 사건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예수와 같은 사랑(희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기독교인들 중에는 예수와 같이 자신의 목숨을 이웃을 위해 내어주는 자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기 목숨을 쉽게 내놓지 못한다.
오늘날 이단에 속한 자들이 자신을 재림 예수요.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예수와 같은 사랑(희생)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 마음속에 예수로 둔갑한 귀신이 들어 앉아 있기 때문에, 그들 또한 예수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에 빠진 자들이 쉽게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예수로 둔갑한 귀신이 성경 말씀을 그럴듯하게 해석하여 설명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미혹 되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진리의 영인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이 미혹의 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까지 받았는데, 왜 예수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 인간의 영(靈)만 지배할 뿐,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결코 자기 목숨을 내어줄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처럼 자기 목숨을 내어줄 수 있으려면, 바울처럼 반드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그래야만 예수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생명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신 자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기 목숨을 이웃을 위해 내어줄 수 있다. 불신자라도 이런 자를 만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모름지기 하나님 아들이 다시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심지어 만물들도 하나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들만이 인간을 온전케 하여 만유를 통일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만이 모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되게 하실 수 있다. 오늘날 가정들이 깨지고 흉악한 범죄가 들끓는 이유도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님 아들이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 누구에게서도 진정한 예수를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오늘날 성령을 받은 자는 많지만, 자기 마음속에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와 같은 사랑(희생)을 나타내 보이려면 성령과 더불어 반드시 자기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그래야 예수와 같은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바울이 기록한 글을 보면,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로마서8:19-21).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 아들들이란? 바로 바울처럼 성령과 더불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바울처럼 성령도 받고 또한 자기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가 계신 자를 두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만 받은 것으로는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자신이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생활 한 것을 보상(구원)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도록 신앙 생활하고도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고 만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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