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율법아래서는 복음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거친반석 2018. 6. 10. 13:36

주일 낮 말씀

본문: 히브리서10:1-18

제목: 율법아래서는 복음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육체에다 율법을 주셨고,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르려 하였고,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켤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10:1-4). 위 글은 히브리서 기자가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기록한 글이다.

 

그러나 위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하면 이렇다.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주일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케 될 수 없느니라! 만약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 참 형상(그리스도의 실체)이었다면, 기독교인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는 죄를 깨닫는 일이 없었으리니, 그렇게 되었다면 어찌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그러나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까지도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니라!”

 

당시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는 자신 또한 율법아래 살다가 사도 바울처럼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회심을 경험한자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글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 성경은 당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한 글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되는 줄만 알고 있던 유대인들로서는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로서는 도무지 복음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당시 율법아래서는 누구나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절대 원칙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이런 행동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율법 생활이 몸에 밴 유대인들로서는 복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과 예수를 믿는 일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유대인들로서는 예수를 믿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당시 유대인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육신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주장이고,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실,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성령만 받으면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율법으로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 또한 기독교인들의 죄를 깨닫게 할뿐,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에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자들의 죄에서 구원하도록 하셨고, 그리고 오늘날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지 모르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과 복음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서 모르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서의 신앙생활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일날마다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배드릴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천국이 자기 마음속에서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기독교인들이 매 주일날마다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여 기독교인들은 예배당에 나가서 자신들이 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고 있다.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자기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를 없애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 자가 기독교인 중에는 단, 한명도 없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죄악 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입만 열면 구원 받았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 헌데 기독교인 중에는 아직까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단, 한명도 없다. 만약 기독교인 중에 단, 한명이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있었더라면 기독교인들은 진즉에 예배드리는 일을 그쳤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곧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령이 정말 그리스도 영이라면, 성령을 받은 자가 왜 계속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죄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빨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줘서 자신의 죄를 없이해 달라는 의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예배를 계속해서 드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누구인가? 성령은 하나님 영이시다. 그동안 마귀 발아래서 신음하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마귀가 심판을 받고 세상 임금 자리에서 떠나자, 에덴동산에서 죄로 말미암아 아담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우리 인간 곁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이에 따라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 받고, 마지막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 발아래서 해방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마귀 발아래 살던 이방인들 또한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마귀 발아래서 나와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법을 성령의 법또는 영적인 율법이라 부른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말게 된다. 성령의 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2천년 역시 마지막에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다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예배당에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기독교인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 난자가 없다보니,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사람을 통해 이런 말씀을 들려줘도 기독교인들이 곧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율법아래 살 때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는 그가 180도로 변하여 이방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자기 동족들에게도 예수를 믿어야 온전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율법에 젖어 살던 자기 동족들은 그를 이단괴수로 보고 잡아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불가분의 관계이다. 율법아래서는 복음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서는 영적인 복음 또한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은 곧 죽어도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겠지만,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이 거듭날 수가 없다.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아 자기 마음속에서 천국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어, 그들의 삶이 기독교인들의 삶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쉽사리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욥기서에 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말씀처럼,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배척하나, 나중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기독교인들에게 영생에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그를 믿고 따르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