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18:21-35
제목: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와 탕감 받지 못한 자!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18:32-35).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는 반드시 남의 죄도 용서해주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죄는 탕감 받았다고 하면서 남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자이다. 그 이유는 남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죄 또한 탕감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 자는 자신의 죄 또한 용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구원 받았다는 말은 자신의 죄를 탕감 받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상대방이 지은 잘못 또한 모두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아직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대방의 잘못 또한 용서해주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입술로는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지 못한 자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으려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어서는 죄를 탕감 받을 수 없고,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을 수 있다.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야, 율법을 거역한 죄를 탕감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가 오시기도 전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않다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기도 전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역시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셨듯이,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율법'과 '성령의 법'아래서 각각 2천 년씩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 백성(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모두 '하나님 법' 아래 가두어 두기 위해서다. 그래야 마지막에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죄에서 각각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에 신앙 생활을 열심히 잘하는 부부가 있었다. 남들이 보면 모두가 부러울 정도로 금술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로가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말다툼이 심해지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가 험악한 말을 하다 보니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逆鱗)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그 후 부부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되어 결국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평소에는 그토록 사이가 좋은 부부였는데 무엇이 이들 부부를 갈라 놓게 만들었을까? 이들 부부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이 이들 부부를 갈라 놓고 말았다. 이들 부부가 정말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라면, 예수를 통해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더라면 파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똑같이 서로가 상대방의 잘못만 탓하다 보니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들 부부는 과연 예수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일까? 그들 부부는 아직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죄 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은 옳고 상대방이 하는 말은 모두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울이 '분을 내어도 하루 해를 넘기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들 부부는 그만 분을 참지 못하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헤어지고 말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들추어내면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막 하게 된다. 이때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막 던진 말이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찌르게 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오늘날 이혼하는 가정 대부분이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지게 되어 나중에는 파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은 비단 불신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이혼율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왜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아직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직도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겨우 홍해 바다를 건넌 것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홍해 바다를 건넌 다음, 요단강을 건너야 비로소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제 겨우 홍해 바다 하나를 건넌 것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경우를 두고 '섯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런 자는 사단의 올무에 걸려들고 말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는 과정은, 불신자로 살던 이방인들이 이제 겨우 하나님 백성이 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불신자로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신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을 두고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육체에 받지만, 이방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는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을 육적인 하나님 백성이라 부른다면,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백성의 신분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죄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이방인들은 마음속으로 ‘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영적인 율법이란? 예수께서 신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으로 가령, 예수께서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미 이방인들 마음속에는 ‘미움’이라는 죄악이 들어있다 보니 누구도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죄악(미움, 시기, 질투, 도적, 거짓, 분노, 음란, 탐욕)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가득하다. 결국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모두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때문에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영적인 율법’ 아래 갇히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이다. 이를 두고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한 이방인들을 '영적인 율법' 아래 가두어 두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 아래 갇혀 있는 유대인들을 죄 아래 가두어 두신 후,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마지막에 예수를 보내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은, 이방인들 마음속에서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 뿐,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해 주지 않는다.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해 주실 분은 오직 이방인들 앞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귀신)’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주신다. 그리스도가 인간이 주인이 되어 주신 자는 다시는 죄에 거하지 않게 된다.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간질 하던 ‘죽은 영’이 떠나고 없기 때문에, 위에 나오는 집사 부부처럼 말다툼을 하더라도 즉시 서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므로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는 상대방의 잘못도 용서해 주기 때문에 절대 파경에 이르지 않는다.
오늘날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부부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 도무지 해결이 안 되는 자는 아직도 자신의 죄를 탕감 받지 못한 자이다. 다시 말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자이다. 그들 마음속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악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가 왕 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는, 자신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에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신 간에도 전혀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가정에서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자신이 죄를 탕감 받은 자인지 아니면 탕감 받지 못한 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구원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 (0) | 2025.01.26 |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0) | 2025.01.19 |
내 피와 내 살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되리라! (0) | 2025.01.05 |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은 귀신을 멸하려 하심이라! (2) | 2024.12.29 |
나는 과연 구원 받은 사람일까? (1) | 2024.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