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후서5:11-19
제목: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5:16-17).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하고 있다. 바울의 이 말은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신 자를 두고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그리스도 대신 죄가 왕 노릇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자신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되려면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그리스도 대신 아직도 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시지 아니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성령과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하시는 일도 각각 다르고, 인간 속에 오시는 장소도 각각 다르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 인간의 영(머리)을 지배하시나, 그리스도는 예수의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인간의 혼(魂)을 지배하신다. 이를 예루살렘 성전에 빗대어 설명하면, 인간의 영(靈)에 해당하는 지성소에 성령이 계시고,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는 성소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과 같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하여,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은 것으로 믿고 있는데,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에 대해서만 알고, 복음(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다 보니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에 대해서만 알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여 모두가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신다. 이때 인간의 영(靈)속에 오신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이방인들로서는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여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쳔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주시고, 하나님 법(율법과 성령의 법) 아래서 각각 2천 년씩 살게 하셨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온전히 지키며 사는 자가 없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인 모두가 끝에 가서는 모두가 ‘하나님 법’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하나님 법’ 아래 갇힌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예수를 보내주셨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이에 따라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유대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착각하여 자꾸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은 것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는 해결 받았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른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겉 사람만 약간 달라질 뿐, 속 사람은 옛날 모습 그대로 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겉 사람 뿐만 아니라 속 사람까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속 사람이 변화 되려면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죽은 영이란? 생명이 없는 귀신을 두고 하는 말로서, 똥이 있는 곳에 똥파리가 날아들듯이, 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귀신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인간들 마음속에 있던 귀신을 쫓아냈던 이유가 바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을 쫓아냈던 것이다.
수년 전 부자 집만 골라 도둑질 하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여 매스콤이 떠들석하게 보도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 하던 그가 일본까지 건너가서 담을 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왜 그가 도둑질 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도둑질을 하게 되었을까? 그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겉 사람은 약간 변했지만, 속 사람까지 완전하게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행실이 다시 튀어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법' 아래서 사는 기독교인의 한계이다.
술, 담배를 하던 사람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술, 담배를 끊었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성령을 받아 겉 사람은 약간 변했지만 속 사람까지 완전히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내도 다시 들어오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귀신을 쫓아내기 때문에 귀신이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이는, 똥이 있는 곳에 똥파리가 날아들기 때문에, 똥을 치우고 똥파리는 쫓아내야 하는데, 똥을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똥파리를 쫓아내기 때문에 똥파리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오직 그리스도만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성령을 받고 시작한 신앙 생활은 육신으로 하던 것을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만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며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해준 예수 이름을 믿게 되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그러자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들도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뛸 듯이 기뻐한 나머지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신앙 생활 하는 것이다. 그 후 바울이 다른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갈라디아로 돌아가 보니,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보고, 위와 같이 책망을 했던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으로는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미움, 시기, 질투, 분노, 거짓, 도적, 음란, 탐심)을 깨닫게 하려고 성령을 주신 것일 뿐,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다. 이를 두고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성령이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며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있어야 할 판에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한 기독교인들을 ‘영적인 율법’ 아래 가두어 놓은 다음,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의 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했던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죄인이 되어 있기는커녕,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인데, 유대인들이 이를 모르고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자,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아가 오셨으나, 예수마저 이단의 괴수로 매도하여 로마 군인들 손에 넘겨주어 예수를 죽게 만들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자꾸만 '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 되다가는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바울이 말한 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예수 안에 있게 된다. 하지만, 율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성령만 받은 것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성령을 받은 것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부활하여 영으로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시는데,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던 ‘죽은 영(귀신)’을 쫓아내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면, 그때부터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신 자는 철저히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다시는 죄에 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있는 자는 다시는 옛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구원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겉 다르고 속 다른 기독교인들의 모습! (0) | 2025.02.02 |
---|---|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 (0) | 2025.01.26 |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와 탕감 받지 못한 자! (0) | 2025.01.12 |
내 피와 내 살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되리라! (0) | 2025.01.05 |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은 귀신을 멸하려 하심이라! (2) | 2024.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