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본문: 마태복음 15:17-20
제목: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15:18-20).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합니까? 왜 밥 먹을 때 손을 씻지 아니합니까?’ 하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예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 들어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영적인 존재를 ‘죽은 영’ 또는 ‘귀신’이라 부르는데, 예수께서 자신을 믿던 유대인들 마음속에서 귀신을 쫓아냈던 이유가 다시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리석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이 율법에 얽매여 손으로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바울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인간을 부패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혹시 성령을 받았으니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이런 죄악들이 모두 해결되고 없는 것일까? 아니면 죄악이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안일까?
여러분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한번이라도 비난해 본 적은 없는가? 거짓을 말해본 적은 없는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해본 적은 없는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 본 적은 적은 없는가? 남의 물건을 욕심 내 본 적은 없는가? 기분 나쁘다며 상대방에게 분(화)을 내 본 적은 없는가? 이런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에서 비롯되고 있다.
오늘날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혹은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자라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런 죄악(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여 신앙생활 말미에 가서는 모두가 타락의 길을 걷고 만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 받은 이유가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악한 영'이 넣어주는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머리 위에 임하여 인간의 영(靈)만 지배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을 해결해 주러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런 죄악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기독교인 누구도 온전한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말씀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이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 자기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기독교인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죄악(죽은 영)이 성령을 거스르게 만들어 죄 아래로 잡아 끌기 때문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는 죄악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을 인정하러 들지 않겠지만,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음란, 거짓, 도적, 탐욕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타락의 길을 걷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울과 열두 제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이유가 성경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육체에 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사는 자가 없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율법을 주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율법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그래야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예수를 보내서 율법 아래 갇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을 주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자,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죄가 살아나는 바람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 아래 갇히고 말았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표면상으로는 잘못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0-21).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구원 방법과 율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의 구원 방법이 똑같을 수는 없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유대인들에게 주신 구원 방법을,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들이 악한 영에게 속아서 잘못된 구원 관에 사로잡혀 있다.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구원 관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는 별도로 주신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아가다 보니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할 방법이 없다. 바울이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하는 말과 같은 이치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죄인 만들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을 두고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을 받았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육체에 받았다면, 이방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것이다. 이런 기독교인들을 두고 영적인 백성이라 부른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과 복음을 말하고 있다면,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과 영적인 복음을 말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순간부터 세상 법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의 법이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만약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경우 모두가 ‘성령의 법’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다 보니 누구도 성경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의 법’ 아래 갇혀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율법을 주신 것은, 유대인 모두를 죄인 만들어 율법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 누구도 성령의 법을 제대로 지키며 살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성령을 주셨다. 그래야 이방인들을 죄인 만들어 ‘성령의 법’ 아래 가두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을 ‘성령의 법’ 아래 가두어 놓아야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의 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겉으로 보면 성령을 거역한 죄 때문에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하는 바울의 말처럼, 기독교인들 또한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깊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도 인간이 만든 세상 법을 따라 살았다. 그러나 세상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다. 가령, 힘 있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반면에 힘없는 사람은 하찮은 죄를 지어도 벌을 받는다. 한마디로 세상 법은 고물 줄 법이다. 이런 법으로는 인간을 죄인 만들지 못한다. 인간을 죄인 만들지 못하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세상 법으로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불신자들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어서 죄를 지을 때 양심이 가책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도 죄의 무게에 따라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온전한 법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마찬가지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하다가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해결 받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다가는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해결 받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구원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0) | 2025.07.06 |
---|---|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니라! (0) | 2025.06.29 |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1) | 2025.06.22 |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3) | 2025.06.15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 (1) | 2025.06.08 |